“매일뉴스 컬럼”

기자명 편집국 (webmaster@every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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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쟁 해결 기구인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이 그동안 주장해 온 남중국해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 중국은 지난 2012년 필리핀 서쪽 해역의 스카버러암초(중국명 황옌다오)를 점유하고 인공섬을 만들었다. 이듬해 필리핀은 중국을 PCA 법정에 제소했다. PCA는 중국이 역사적 권리를 내세워 그었던 남해구다선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남해구단선은 남중국해역의 90%를 차지해 필리핀, 베트남 등 주변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과 겹친다. 중국으로선 남중국해를 자기들 앞마당으로 만들어 영향력을 확장시켜 나가겠다는 대외 전략에 큰 차질이 생긴 셈이다. 이번 판결은 남중국해 서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 간 분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 양국은 평화적 해결을 말하고 있지만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은 다분하다. 이번 판결로 남중국해 문제가 격량에 빠져들면서 이 일대의 재해권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중국 외교부는 판결이 나온뒤 비합법적이며 무효라고 반발했다.
중국은 판결 전부터 중재법정에 대해 필리핀의 불법적인 요구를 기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던 만큼 예상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중국해 해역의 대부분이 중국 관할이며, 이는 역사적으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는 중국의 주장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판결이어서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판결 수용을 촉구하며 대중 공세를 강화할 게 분명하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 전선은 중국과 필리핀 등 주변국에 걸쳐 있으나 핵심은 해양강국을 꾀하는 중국과 이를 제압하려는 미국 간 경쟁이다. 이번 판결로 아시아의 안보지형은 당분간 시계 제로의 혼란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중국해 문제는 아·태지역의 다른 어떤 사안보다도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을 부를 위험성이 높다. 그러지 않아도 미국은 항해의 자유를 내세워 자국 군함을 중국이 주장하는 영해에 진입시켜 왔다. 시진핑 주석이 남중국해 관할부대에 전투준비명령을 시달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남중국해를 핵심이익의 범주에 두고 있는 중국이 남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전격 선포할 수도 있다.

전 세계 무역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조달러의 교역이 이루어지는 남중국해가 불안해지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주요 2개국(G2)가인 미·중은 갈등을 관리할 의무가 있고 마땅히 대승적 자세가 필요하다. 2013년 1월부터 남중국해에서 매립작업을 진행하면서 공격적 행보를 보여온 중국은 미국에 개입할 명분을 준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의 국제화·다자화를 반대해온 것도 따지고 보면 국력이 약한 동남아 국가들과 힘으로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속셈에 다름 아니다.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추구해온 미국 역시 국제법과 국제규범을 근거로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중 봉쇄 전선을 구축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미국이 말하는 항행의 자유 속에는 군사적 활동의 자유가 내포돼 있다는 중국의 우려를 인정해야 한다.

미·중은 자존심 대결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적 결과를 인식하고 협력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남중국해 갈등을 줄기 위한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비록 양국이 남중국해상에서 군사적 충돌을 자제하더라도 아시아 각국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전을 벌일 가능성은 높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을 요구하며 줄세우기를 강요받는 상황은 한국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동맹인 미국과 경제대국 중국 사이에서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게 될 경우를 예상해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사드 배치 발표 후 한·중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경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