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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편집국 (webmaster@every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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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일기예보 하면 떠오르는 김동완 통보관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기상 예보 이만하면 잘하는 거다. 확실하면 확보라고 하지 왜 예보라고 하겠나.” 자연현상에는 아무리 해도 어쩔 수 없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항변이었다. 그 무렵 김씨는 늘 가방에 우산을 갖고 다녔다. “기상청 예보관이 비 오는 날씨도 모르고 비 맞고 다닌다는 소리 듣게 될까 봐” 라고 했다.
기상청 직원들에게 1998년 지리산 폭우와 2002년 태풍 루사는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라북도에 50~150mm 비가 올 것” 이라고 예보했는데 지리산에 한 시간 사이 300mm 폭우가 쏟아졌다. 등산객 60여명이 숨지고 30여명이 실종됐다. 태풍 루사 때는 “최대 300mm의 비가 올 것” 이라고 했는데 강릉 지방에 870.5mm가 내렸다. 자연재해 사상 최고인 5조 1500억원의 재산 피해를 낳았다. 알려야 할 것을 제대로 알려 대처하게 하지 못한 죄였다. 그렇다고 ‘만약’ 에 대비해 ‘알려야 할 것’ 을 넘어서는 것도 안 된다.
기상청에는 청장이 오보로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쪼인트 까인’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대통령 행차를 앞두고 “눈이 올 것” 이라고 보고해 헬기를 못 뜨게 했는데 눈이 안 왔던 탓이다. 기상청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폭설이 내릴 거라 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으면 초조하다가 하늘에서 한 송이 두 송이 눈이 떨어지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 만약 눈이 안 오면 비상 대기하던 경찰·군·방송사·공무원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뒤집어 써야 한다. 난감한 것은 새해 해맞이를 하는 1월 1일 아침 동해안 날씨를 예보할 때라고 한다.

흐리거나 눈이 올 것 같아도 곧이곧대로 예보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 그 지역 상인이나 지자체에서 “대목 장사 망칠 거냐” 는 원망이 빗발친다. 그래서 예보관들은 “때에 따라 햇살이 비치기도 한다” 는 말을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
기상청 예보로는 폭염이 곧 끝난다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더 덥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더위 종료 선언’ 을 되풀이하는 기상청을 향해 ‘청개구리 예보’ 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더위 꺾이기를 바라는 사람들 소망을 담으려고 기상청이 일부러 갸륵한 오보를 하는 건가. 아무리 자연은 알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상 장비가 아깝지 않게는 해야 할 것이다.
더위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는 자연재해다. 2003년 유럽에서만 7만 1310명, 2010년 러시아에선 5만 5736명이 죽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온열질환자 수가 1160명(사망 10명)으로 5년간 연평균 수치(1128명)을 넘어섰다. 가축, 물고기 양식장은 물론이고 밭작물도 타들어 가고 있다. 비가 와야만 더위도 한풀 꺾이고 밭작물도 원가를 회복할 것이다.
기상청은 올해 기압계 패턴이 지난 30여년간 겪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이례적인데다 북태평양 고기압과 중국발 더운 공기 유입 같은 변수들이 많아서 예측이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기상청 오보는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 고문’ 을 했다. 그래도 올해만큼은 532억 원짜리 슈퍼컴퓨터 4호기가 2월부터 가동되고 세계 최고 소프트웨어 ‘수치 예보모델’ 프로그램이 가동돼 다소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는 것을 보니 기계 문제보다 사람 문제가 큰 것 같다.
2014년 기상청의 납품 및 인사비리가 터져 나오자 비리척결단까지 출범해 “특정 학맥으로 연결된 기피아(기상청 마피아)가 있다” 며 이를 깨려는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납품 비리가 계속됐다. 기계가 아무리 좋아도 데이터를 읽고 해석하는 예보관 능력이 떨어지면 무용지물이다. 기상청이 오보를 남발하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을 통해 들여다보는 날씨 앱은 정확할 때가 많았다. 기상청의 무사안일을 깨려면 민간 부분에 기상영역을 더 활짝 열어줘야 할 것 같다.
/나경택 주필